10.19연구소 아카이브 이용 만족도 조사 (~2024.02.15)

공지사항

10.19연구소 아카이브 이용 만족도 조사 (~2024.02.15)

안녕하십니까? 국립대학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한 10・19연구소 <아카이브>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연구소에서는 현재 구축된 <아카이브>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아카이브를 이용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응답하신 의견은 <아카이브> 운영을 위한 소중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오니 성실하게 설문에 응답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귀하께서 응답하신 자료는 통계적 목적으로만 사용될 뿐 개인 정보 등은 「통계법」 제33조에 의거하여 철저히 비밀이 보장됩니다. 만족도 조사로 바로 가기

2024-01-31

여순사건 희생자‧유족 신고, 올해 12월 31일까지 추가 접수

공지사항

여순사건 희생자‧유족 신고, 올해 12월 31일까지 추가 접수

◇‘여수․순천 10․19사건’ 희생자‧유족 신고기간이 2023년 12월 31일까지 연장된다. -행정안전부는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여수ㆍ순천 10ㆍ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개정안이 3월 14일(화)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고 밝혔다. -당초, 행정안전부와 여순사건위원회는 2022년 1월 21일부터 2023년 1월 20일까지 1년을 ‘여수․순천 10․19사건 희생자‧유족 신고기간’으로 지정하고 총 6,599건의 신고를 접수받았다. -그러나, 신고기간 종료 후에도 꾸준히 신고‧접수 요구가 있고, 수형인 명부 등 희생자 자료 추가 발굴,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된 사건 이관 등으로 새로운 신고수요가 예상됨에 따라 신고기간을 연장한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여수․순천 10․19사건’ 희생자 및 유족들은 2023년 12월 31일까지 신고할 수 있게 된다. -전라남도 내 거주자는 가까운 시·군, 읍·면·동 민원실을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제출하면 되고, 전라남도 외 거주자는 여순사건지원단(전남도청 소재)에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신고서를 제출하면 된다. * 우편접수처 : (58564) 전라남도 무안군 상향읍 오룡길 1. 전라남도 여순사건지원단

2023-04-07

여순사건 74년만에첫 정부 합동 추념식

공지사항

여순사건 74년만에첫 정부 합동 추념식

여순사건 74년만에첫 정부 합동 추념식여순사건 74년만에첫 정부 합동 추념식여순사건 74년만에첫 정부 합동 추념식여순사건 74년만에첫 정부 합동 추념식여순사건 74년만에첫 정부 합동 추념식여순사건 74년만에첫 정부 합동 추념식여순사건 74년만에첫 정부 합동 추념식

2023-02-03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주철희, 흐름, 2017)

여순사건 69주년을 앞두고 출간한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의 책이다. 이 책은 "사건의 성격상 반란이 아니라 '항쟁'이라며 정명(正名)운동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여순사건 발발 당시의 1차 사료를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국군 제14연대 봉기군이 수도 점령이나 정부 전복, 권력자 축출 등의 계획이 없었고, 새로운 권력 주체를 미리 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반란과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주 박사는 '반란'과 '항쟁'의 목적이나

빨갱이의 탄생(김득중, 선인, 2009)

여순사건은 대중 억압 체제로서의 반공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결정적인 계기로 활용되었다. 여순사건에서 경험한 좌익 세력과 대중운동에 대한 공포 그리고 진압과정에서 작동된 국민 형성의 논리는 대한민국을 반공사회로 만들어가는 주요한 경험과 근거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남한 반공체제의 기본적인 구조와 작동 원리를 제시했다.

'빨갱이'란 단지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낱말이 아니었다.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 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

정미경 소설 <공마당>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순사건’과 유족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공마당』에는 소설 어디에도 ‘여순사건’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생생하고 절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에서 5년째 유족들의 상처를 직접 채록·정리하는 일을 해왔다.

“채록을 한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 들러 막걸리 한 병을 샀다. 녹화된 영상에서 그분들의 말을 옮겨 적으며 나는 한순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어간 ....

'REVOLT IN KOREA'

'평화로운 천국'에 찾아 온 두 번의 죽음, LIFE 1948년 12월호
그러는 동안 여성들과 아이들은 이를 지켜봤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중에서 나에게 가장 끔찍한 시련은 그 지켜보는 자들의 침묵과 자신들을 포획한 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남자들이 보인 조심스러움이었고 그들이 끌려가서 총을 맞을 때 보인 완전한 침묵이었다. 항의의 말 한마디, 동정을 구하는 비명 소리, 신의 도움을 구하는 중얼거림도 없었다. 다시, 이런 세기가 그들에게 주어진들 그게

순이의 시월

박금만 초대전 제주4·3, 여순 10·19 연계전시

순이의 시월

2023.04.04.(목) - 04.20.(목)

여수 노마드갤러리

여수군 인민대회(박금만 그림)

1948년 10월 19일 14연대 군인들의 봉기가 도화선이 되어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로부터 억눌리고 착취당하던 여수시민들이 다음날인 1948년 10월 20일 오후 2시에 여수 중앙동 대판통(진남관 앞)거리에서 인민대회를 거행하였다. 미군정의 탄압으로 와해된 여수 인민위원회(시민자치행정기구)가 다시 결성되어 7일간 여수의 행정을 이끌었다.

이용기 여수인민위원장이 6개항을 발표했다. 내용은 친일파척결, 은행예금을 동결하고 재산을 압수하며, 적산가옥과

열린광장

10·19 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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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송쟁이(주령골) 민간인 학살지 (광양시 광양읍 덕례리 주령길 13-12 일대)

반송쟁이 위의 차가운 심장(박금만 그림) 1948년 10월 20일 여순항쟁 당시 광양경찰서 1개 중대 경찰병력이 순천으로 봉기군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였으나, 순천 진입 전에 봉기군의 기습을 받아 3~4명의 희생자를 내고 철수하였다. 돌아 온 경찰은 좌익혐의자로 체포하여 광양경찰서 유치장에 수감 중이던 사람들을 덕례리로 데려가 살해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는 30여 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 반송쟁이 학살은 여순항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경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다. 당시 호남신문 사진부장이었던 이경모는 이곳에서 벌어진 학살의 장면을 촬영하였다. 그의 사진 속에는 시신(김영배)을 수습하는 모습, 모친·누이·여동생이 통곡하는 모습, 지게의 시신 앞에 누이가 통곡하는 모습 등이 촬영되었다.

여순 10·19 평화공원

1948년 10월 20일 조곡삼거리(옛, 광양삼거리)와 장대공원 일대에서 봉기군과 경찰 사이에 최초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1948년 10월 20일 순천을 비롯하여 인근 지역에서 지원 나온 경찰, 우익 청년단원 수백 명이 봉기군을 저지하려 했다. 이들은 조곡삼거리와 동천 제방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공방전을 벌였으나, 봉기군에게 패하였다. 더욱이 광주에서 진압하러 내려온 4연대 병력이 봉기군에 합류해 버림으로써 더욱 수세에 밀렸다. 결국 경찰의 상당수가 전투 중에 사망 또는 부상당하거나, 일부는 피신함으로써 순천읍내를 봉기군이 장악하였다. 이곳은 당시 순천의 외곽지역으로 좌,우익의 시신들이 널려있던 곳이기도 하다. 순천시에서 이러한 공간의 역사성을 알리기 위해 역사공원지역으로 선정하고 공원명칭을 시민들에게 공모한 결과 ‘여순10·19평화공원’이 선정되어, 순천시에서 2021년 10월 14일 ‘여순10·19평화공원’으로 선포하고 표지석을 설치하였다. 2023년 1월 조형물(뒤틀린 총구)을 설치하고, 여순10·19 상황을 잘 보여주는 칼마이던스의 사진을 활용하여 여순10·19의 전개를 알 수 있는 안내판도 추가로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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