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14연대 주둔지(여수시 신월로 411(신월동))
1948년 제주 출병을 거부하고 봉기한 육군 제14연대 병영이 있었던 곳이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일제는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해군 202부대와 군수품공장을 건설하였다. 이곳은 가막만과 구봉산 뒷산의 지형을 이용한 천연 요새였다. 그리고 바다쪽으로 수중활주로를 건설하여 비생기가 뜨고 내렸다고 한다. 부대 건설을 위해 전남동부지역의 민간인과 학생들을 동원하여 ‘근로보국대’라 하고 2개월씩 교대로 일을 시켰다. 그리고 원활한 물자 수송을 위해 미평에서 신월리까지 ‘신월선’ 철도를 건설하기도 한다. 해방 무렵에는 90% 정도의 공정을 보이고 있었는데 일제의 패망으로 빈 막사와 격납고만 남아 있던 곳을 미군정이 인수하였다. 일본군들이 건설했던 동굴 벙커가 현재도 보존되어 있다.
1948년 5월 4일, 국방경비대는 광주 4연대에서 차출된 1개 대대병력을 바탕으로 이곳 신월리에 14연대를 창설하였고, 초대 연대장에 일본해군 출신 이영순 소령이 부임하였다. 이어 김익렬 중령, 오동기 소령을 거쳐 박승훈 중령이 연대장이던 1948년 10월 19일 제주출병 명령을 거부하면서 여순사건이 발생한다. 여순사건이 완전히 진압된 1948년 10월 28일 14연대는 해체된다.
그 이후 6.25전쟁 때는 육군병원이 설치되었으며, 전후에는 보사부 결핵환자 자활촌으로 이용되다가 1976년 7월부터 한화여수공장으로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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