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작가는 지난 2018년 설립된 순천대학교 10·19연구소에서 5년째 유족들의 상처를 채록하고 정리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10·19연구소는 1948년 10월 19일 일어난 ‘여순사건’ 구술채록과 학술대회 등을 통해 진실 규명과 재해석 작업을 진행해왔다.
“채록을 한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 들러 막걸리 한 병을 샀습니다. 녹화된 영상에서 그분들의 말을 옮겨 적으며 나는 한순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들, 그들을 가슴에 묻고 행여 가슴옷자락 풀며 튀어나올까 봐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을 감당하기 힘들었지요.”
정 작가는 채록하는 틈틈이 한 문장씩 소설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이번에 펴낸 소설집 ‘공마당’(문학들)은 그런 결실의 산물이다. 강의도 해야 하고 연구소 일을 해야 하면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어떻게 소설을 쓸 생각을 했을까.
그는 “어쩌다 만나는 지인이나 친구에게 유족들 얘기를 하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했다. 그것은 유족들도 마찬가지였다”며 “그들이 듣고 싶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그 이야기에는 ‘죽음’이 따라붙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떼 같은 죽음, 그러나 현실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고통을 체감하지 못하는 이야기. 정 작가는 “10·19이야기는 유족들과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것을 소설로 쓴다면 사람들이 읽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작품을 쓰게 됐다고 부연했다.
구술채록을 하며 ‘마지막으로 국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화해하고 싶다”는 말이 돌아온다. 국가가 하지 못하는 화해와 용서를 먼저 말하며 “명예회복 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는다.
“연좌제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게 해달라는 말도 빼놓지 않아요. 그리고 어렵게 내놓는 말 가운데는 ‘보상 좀 해주면 그것으로 가신 분들의 묘를 쓰고 싶다’는 내용도 있지요. 살아남은 자로서 죽어간 이들에 대한 예를 갖추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어요.”
작가에 따르면 구술채록 대상 명단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그러나 막상 채록 현장에 가보면 어머니나 누나가 좀 더 세세하게 기억을 하고 있다. 대부분 희생자가 젊은 아버지이고 오빠이고, 주춧돌과 기둥이 빠진 상태에서 어머니나 누나가 실질적으로 집안을 이끌어왔다는 방증이다.
“그 시절 여성들의 삶이 대부분 그러했지만 여순사건을 겪은 분들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무게가 씌어져 있어요. 남성들은 그 상처를 어머니나 아내에게 쏟아냈죠. 그렇다고 그 여성들이 고통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뒤로하고 그것을 껴안으며 실질적으로 생활을 이끌어왔어요.”
이번 소설들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생존의 대가로 남겨진 부끄러움, 트라우마를 모티브로 한다. 비극은 ‘손가락질’로부터 시작됐다. 어린 시절 손가락질로 사람을 죽게 한 트라우마로 정신병을 앓는 엄마를 소녀의 시선으로 그린 표제작 ‘공마당’, 순경들이 마을에서 “좀 모자란 놈”을 골라 손가락질을 하도록 한 ‘독사의 뱃가죽’, 고문 끝에 친구의 동생을 지목할 수밖에 없었던 ‘금목서’ 등 작품이 그런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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