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 예술

미곡수탈(박금만 그림)

여순항쟁이 일어나기 전 여수나 순천 또는 전국적으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미곡 수집령으로 쌀 가격이 폭락하고 정부의 관리들은 착취한 쌀을 창고에 넣어두고 비싸 질 때까지 풀지 않았다. 농민들의 그 피 같은 쌀로 자신들의 배만 불릴 기회를 엿 보았고 실제로 두 배 이상 폭등 할 때 팔아서 부를 축척 하였다. 이런 부류를 당시는 모리관상배라 하였다.

 

관리들은 경찰이 비호하는 가운데 농민에게서 쌀을 무자비하게 착취해 갔다. 여수 농민들은 자신이 농사 진 쌀을 두 배 값을 주고 사먹어야 할 상황이었다. 여수 토박이인 86세의 한 할머니는 자산공원 밑이 자신의 집이었다고 한다. 여순항쟁 당시 집 아래 종화동 식량영단창고(정부의 창고)가 있었는데, 활짝 열린 식량영단창고에 쌀이 썩어나고 쥐가 들끓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말해주셨다. 이렇게 많은 쌀이 썩어나고 있는데도 쌀을 풀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에게 굶주린 민중이란 무엇이었을까?

 

작품 속에서 한줌의 쌀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농부의 저항!

우리 민족에게는 쌀이란 목숨이었다. 14연대의 봉기로 촉발된 여순항쟁은 여수 민중의 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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