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기고문

순천광장신문 칼럼) 10·19사건을 위한 연구소를 지원하자

10·19사건을 위한 연구소를 지원하자

 

최관호(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여순사건(이하 ‘10·19사건’) 특별법은 진상규명과 피해자(특별법에서는 희생자로 표현함)의 명예회복을 목적으로 한다. 국가기관, 전문가, 모든 국민과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모든 학문 영역의 전공자들 간의 유기적인 연구가 필수적이다. 모든 학자들이 달라붙어야 하지만, 학살과 국가범죄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로서 무척이나 힘든 것은 10·9사건을 연구하는 학자가 너무나 부족하다(아니, 없다)는 점이다.

 

 학자는 학문에 능통한 사람 또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주로,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전문적으로 연구에 파고드는 사람이다. 독일의 피히테는 학자를 “자신이 속한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아는 역사적 인식을 얻기 위해 자신의 생을 헌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요한 G. 피히테, 서정혁 옮김,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의 책 소개 중)고 했다. 현실 사회와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객관적 연구로 이것을 메꿀 수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철학은 …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면서 실천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수많은 저술로 현대 학문에 더 영향을 끼쳤다.

 

 일반적인 공부와 전문적인 연구가 구별되는 것은 후자는 다른 연구자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연구 주제에 인생을 건다는 점이다. 연구자는 연구자들만의 약속이 있다. 타인의 연구를 존중해야 하며, 그 연구들을 최대한 분석해야 하며, 타인의 연구를 활용하거나 참고할 때는 그것을 밝혀야 하며, 그 연구를 비판할 때는 논리적이고 근거를 제시해야 하며, 연구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이어야 한다 등등. 이런 약속은 그냥 지식이 아니라, 대학·대학원 등 연구자 양성 과정을 통해서 체득한다. 그 중에 직업을 가지고 학문을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은 다시 제한된다. 직업으로 학문을 하지 못하면 그 인생은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도 말 그대로 인생을 거는 작업이다. 이건 도박이다.

 

 10·19사건을 위한 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또 어려움이 있다. 이 사회가 10·19사건을 논의하는 것을 터부시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빨갱이와 연좌제, 국가보안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회이다. 학살과 국가범죄를 논하는 것이 어려운 사회에서 10·19사건 연구자 양성은 도박보다도 더 어렵다. 그래도 시도해야 한다.

모든 것은 교육에서 시작한다. 10·19라는 학살과 국가범죄를 반성하는 교육을 일상화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진 모든 학살과 국가범죄가 반인륜적인 행위임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후속세대에 대한 앞 세대의 각오를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인권친화적인 학교 교육을 실현해서 학살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주장을 건전하게 비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은 학생들이 이 지역에서 정주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삶의 향유라고 느낄 수 있도록 지역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다양한 전공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기본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이 지역의 대학원은 아픈 역사의 다양한 주제를 연구할 수 있는 시설과 장비 및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연구자가 연구 공간과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도록 연구소 등 지속적인 연구시설을 완비해야 한다.

 

 지난한 시간이 필요하다. 위의 사례를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좀 과장해서) 연구소 운영까지 30년 이상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30년 이상이 걸려야 10·19사건을 연구하는 학자를 한 명이라도 배출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의식의 변화에서부터 경제적 지원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회, 초중등 교육기관과 대학, 시민사회단체, 대학 연구소 등 관련한 모든 것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연구소를 30년 후에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30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

 

 10·19사건을 위한 연구소가 최소한 30년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연구소가 스스로 운영자금을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연구소가 경제적 상황의 타개를 위해서 용역에 손을 벌리는 순간 학문은 밥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하고, 30년 후에 다시 우리는 실천을 위한 학문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 때부터 다시 30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지역 사회 전체 구성원은 이 모든 전제들을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학문의 재생산이 가능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지원을 해야 한다.

 

 그래도 항상 희망이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연구를 못하던 시기에 10·19사건과 반공국가의 형성과정을 연구해 준 학자가 있었다는 점이 무척이나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지금 제가 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꾸준히 10·19사건을 이슈화해 준 지역의 대표적인 활동가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상기 기고문은 6월 3일 순천광장신문 홈페이지에 게재되었습니다(http://www.agor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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