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과 젠더폭력, 그 사이 소거된 여성의 목소리를 이제는 들어야 할 때
김소진(순천대학교 10·19연구소)
5·18민주화운동이 44주년을 맞이했다. 그간 5·18관련법에 따른 진상규명 노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특히 5·18 당사자로서 여성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8년 미투운동 이후 5·18 성폭력 피해에 대한 증언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국방부가 공동으로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5·18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 내용 총 17건과 이외 연행·구금된 피해자 및 일반시민에 대한 성추행과 성고문 등 성폭력 피해가 있었음을 확인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5·18 성폭력 피해에 대한 공개 증언이 있었으나 “쟁점 사안이 아니다”, “아무리 흉악해도 그렇게까지 했겠느냐” 등의 이유로 야당 국회의원 및 관련자의 만류로 결국 증언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를 내기까지 20년이, 5·18 성폭력에 대한 진상규명 결정과 국가폭력의 피해자로서 ‘국가’로부터 인정받기까지 43년이 걸렸다. 이처럼 국가폭력과 젠더폭력이 중첩되는 경우에는 말을 못하게 하거나 증언 자체가 의심받거나 부정되는 것은 5·18성폭력뿐만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제주 4·3사건, 동일방직 여성노동자 파업, 삼청교육피해, 형제복지원 사건 등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는 가장 마지막에서야 겨우 ‘듣기’ 시작한다.
특히 한국 현대사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재구성된 역사, 즉 성폭력과 성범죄로서 재구성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물론 이는 전쟁범죄에 해당하지만) 피해자가 50년 동안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침묵을 강요당해 온 것은, 결국 그 본질이 젠더화된 국가폭력인 것에 있다. 이러한 특징은 5·18민주화운동과 4·3사건과 같은 다른 과거사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4.3사건의 경우,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하면서, 4·3사건의 발생과 전개 과정, 피해 상황을 조사했지만 여성의 피해 경험은 주변화되었다. 예컨대 4·3 피해가 학살과 살상 중심으로 정리되어 증언자가 여성임을 알기 어렵고, 여성은 도피자의 가족으로서 대살되거나 혹은 성폭력 및 폭행을 당한 경우 대부분 “남편 혹은 아버지의 잘못”으로 대신 희생당하는 등 성별에 따라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방식에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고서에서 특별히 정리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법률에 근거한 진상규명 기구의 보고서에서조차 국가폭력으로서 젠더폭력을 인정하거나 다루지 않는 데는 남성 중심의 서사를 사실화하고, 국가폭력과 젠더폭력의 충층적 가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사 사건에서 발생한 젠더화된 국가폭력은 가해 주체가 국가라는 점,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점, 가해행위가 발생한 시점이 과거라는 점에서 더욱 진상규명이 어렵다. 또한 그동안 여러 과거사 정리 기구가 있었으나 젠더화된 국가폭력에 대한 접근과 조사방법에 대한 연구 및 방법론이 부재하고 이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욱 다루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사 사건에서 발생한 젠더화된 국가폭력을 제대로 조사하여 이행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폭력과 젠더폭력, 그 사이 소거된 여성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젠더화된 국가폭력을 다루는 포괄적이고 독립적 조사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상기 기고문은 6월 27일 순천광장신문 홈페이지에 게재되었습니다(http://www.agor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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